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야스쿠니 신사/사건사고 (문단 편집) == 야스쿠니 대만인 시위 사건 == 2009년 8월 11일 대만인들이 일본을 방문해 야스쿠니 신사의 배전 앞에서 야스쿠니 신사 반대 활동을 벌였다. [[https://youtu.be/2_sFeqh2d58?si=knpvh0aOn2PMWuHI|1]], [[https://youtu.be/pyRe8BhpNTg?si=kugTX2NNFx51yKdL|2]] [[대만 원주민]] 출신으로, 영화배우로도 유명했으며 40세에 중국 대입시험을 거쳐 중국의 명문대에 합격해 화제를 모았던 대만의 여성 입법위원 가오진 쑤메이는 8월 11일 오전 대만인 약 50명과 함께 '합사를 중단하라'고 위쪽에는 중국어로, 아래쪽에는 중국어와 일본어가 같이 혼용되어 있는 상태로 쓴 플래카드를 들고 야스쿠니 신사를 습격하였다. 시위대들이 야스쿠니 신사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제지에 나선 신사 직원들과 몸싸움도 벌어져 일부 부상자가 발생했다. 경비병들이 위에는 구호 현수막을 빼앗으려고 했고, 양측 간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시위대는 계속 전진해 본당 앞 넓은 광장에 도착했고 "야스쿠니 NO!NO!NO!", "신사사과배상!", "조상의 영령을 돌려달라"는 구호를 외치는 등 시위를 벌였다. 이후 일본 경찰 인력들은 시위대를 저지하기 위해 차례차례 본당 앞 광장으로 진입했고, 일본 경찰이 시위대를 제지하려하자 양측 간 상대적으로 격렬한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며 시위가 격화되었다. 경찰로 위장한 대만인들까지 몰려들어 시위대를 제지하는 척 하다가 시위대를 제지하려는 일본 경찰과 다툼을 벌이면서 야스쿠니 신사 안 상황은 난투극으로 변질됐다. 이어 시위대는 중앙광장에서 레퀴엠을 불렀으며, 약 30분 정도 머물다가 줄을 서서 야스쿠니 신사 본당을 빠져나온 뒤 차로 현장을 떠났다. [[일본]] 내에서는 "단호히 용서할 수 없다", "남의 나라에서 왜 소란이야?", "미치광이 중국인들은 일본에 오지마라", "이놈들 전부 일본 입국 금지 시켜야한다", "경찰은 이걸보고 대체 뭘 한거냐", "이 녀석들 전부 죽이고싶다!", "하는 짓거리가 더럽다"는 등 [[적반하장|크게 발끈했다.]] [[대만]]은 [[친일]] 성향이 매우 강한 곳인데 [[대만인]]들이 이러한 시위를 벌였다는 사실에 대다수의 [[일본인]]은 충격을 받으며 이 사건을 두고 대만인이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며 시위대가 대만인이 아닌 중국 본토 출신이라거나 [[외성인]]이나 중국 공산당원이라고 악을 썼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이 이 시위대들은 대만인이다. 물론 대만인들이 일본에 우호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였을때 [[우서 사건]]을 비롯한 참혹한 학살이 있었고 일본의 전쟁범죄에 강제징용된 [[대만 원주민]]들을 야스쿠니 신사에 무단으로 합사하면서 같이 합사된 A급 전범들과 동급 취급하며 참배하고 있다 보니 대만 역시 평상시의 호의적인 감정과 관계없이 [[야스쿠니 신사]]에 반발한다. 무엇보다 가오진 입법위원이 [[대만 원주민]] 출신임을 감안하면 더욱 분노할 점이다. 때문에 가오진 입법위원은 그동안 일본을 10차례나 방문해 [[야스쿠니 신사]]에 [[대만 원주민]]의 조상신을 돌려줄 것을 요구하는 활동을 벌인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다큐멘터리에 나오며 주목을 받은 인물이다. 2007년에는 야스쿠니 신사에 관한 영상을 모아 만들어진 중일합작 다큐멘터리 영화인 야스쿠니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가오진 입법위원은 대만도 한국처럼 일본에 당당히 맞서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즉, 친일성향과 혐한감정이 매우 강한 대만에서 한국과 손잡고 일본을 비판할 정도로 야스쿠니 신사의 행태가 심각한 것이다. 당시, 일본 총리였던 [[하토야마 유키오|하토야마]]가 이 시위에 대해 아무 반응도 없자 일본 내부에서는 "하토야마는 이걸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거냐?"라는 반응도 있었다. 게다가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오히려 이 시위가 발생한 2009년 8월 11일 "총리 되더라도 야스쿠니 참배 안할 것"이라고 발언하자 일본에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 또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판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불참하였으며, "야스쿠니는 머리에서 지워달라"라는 발언까지하자 오키나와의 주일미군기지인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와 정치자금 스캔들, 중국와의 어선 분쟁 외교 굴욕, 경제 불안 등과 함께 결국 위상이 추락하여 집권 약 9개월 만에 퇴임하였다.] 2009년 8월 17일 일본 오사카의 히고바시역에서 2명의 남성이 야스쿠니 신사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가오진 입법위원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2009년 12월 일본 극우들이 가오진 입법위원을 "일본인의 종교적 감정을 침해했다"며 고발했다. 일본 경찰은 이례적으로 외국 국회의원을 서류상으로나마 입건했지만 재판에 넘기지는 않았다. 야스쿠니 신사에 침입한 혐의(건조물침입과 위력업무방해, 상해)로 불구속 입건된 가오진 쑤메이 대만 입법위원을 불기소처분했다. 입법위원은 국회의원에 해당한다. 일본 검찰은 불기소한 이유나 상세한 내용은 '사생활에 관련되는 사항'이라는 이유로 밝히지 않았다. 어차피 가오진 입법위원은 대만에 있었기 때문에 형사 처벌은 불가능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